인도고전춤

인도전통춤 개괄-1

스와라인디아 2005. 12. 22. 15:46
 

들어가며 


카타칼리 밤샘 공연을 처음 보던 날을 기억한다.

축제나 기념일, 또는 힌두 사원 등지의 상설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카타칼리 공연은 주로 밤 아홉 시경에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 여섯 시나 일곱 시까지 이어진다. 카타칼리 공연 관람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공연예술 관행에 비추어보자면 가히 ‘이색적’이고도 ‘고단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날 -그 후로도 한 이년 동안- 난 공연관람 중 한번도 자지도, 한순간도 졸지도 않았다. 무대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사사건건 관심을 가지고 요모조모 따져보고 생각하며 보이는 그대로 맘껏 웃기도, 혼자서 엉뚱한 생각으로 낄낄대는가 하면 심각하게 상념에 빠지기도 하며 나는 ‘모르는’ 자로서의 즐거움을 한껏 누렸다.


코끼리 달리기 경주대회로 유명한 ‘구루와유르 사원’ 외부 무대(아직도 몇몇 힌두 사원내부에는 외국인이나 비힌두교도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곤 한다. 애초에 인도전통춤은 쿠땀발람이라는 사원 내 극장에서 이루어졌는데 현대로 내려오면서 사원예술이 대중화되면서 비힌두교도들의 공연 참여와 관람을 위해 사원 외부에 따로 무대를 만들었다.) 에서 이루어진 공연장 객석엔 찾아온 사람들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나처럼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빛의 외국인 몇 명과 카타칼리 공연장이면 어디든 나타나는(이후의 공연장에서 자주 얼굴을 마주쳤던) 카타칼리 ‘미식가’들, 벌써부터 자리깔고 -잘- 준비를 하고 있는 일반관객부터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이른 새벽 사원의 첫 예배를 기다리는 신자들에 이르기까지.


공연시간이 가까워오자 무대진행자들이 무대 앞쪽 중앙에 놓인 램프에 심지를 드리고 코코넛 기름을 부어 불을 밝혔다. 이어 맨몸 상체에 아랫단에 금박을 두른 ‘문두’(인도 남성들의 하의로 길이 1.5미터 폭 3내지 6미터의 단순한 직사각형 모양의 천을 허리에 두른다.) 차림의 가수와 타악기 연주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공연에 앞서 악기에 대한 간단한 인사로 신에 대한 경건함을 표현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악기와 악기를 다루는 손, 그리고 그손을 지탱하는 행위자 자신을 이어주는 신성한 인사는 나에게 숙연함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처음 배운 카타칼리 동작이 무대에 대한 인사였듯이 인도에서 공연행위 자체는 신께 바치는 기원과 호소의 인사에서 비롯되었음은 이러한 공연자들의 관습에서 잘 드러난다.


곧이어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마딸람(카타칼리를 이끌어가는 타악기는 첸다와 마딸람 두 타악기이다. 첸다는 높고 격렬한 음색으로 남성적 이미지를 마딸람은 다채롭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여성적 이미지를 대표하며 여성 역할의 반주는 첸다없이 마딸람으로 이루어진다.) 독주가 대중들과 공간을 일깨으며 무대 중앙에서 시작되고 공연진행자들이 양쪽에서 무대막(티라실라라고 불리는 이 무대막은 고정된 설치물이 아니라 공연진행자들과 연희자들과 호흡을 맞춰 가며 극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을 치자 잠시 뒤 첫 인물이 등장했다.

뿌라빠두라 불리는 이 순수무용은 보통 크리슈나로 분한 무용수가 시종일관 스링가람 라사(사랑의 정조)로 빠른 장단, 가수들의 아름다운 노래 선율에 맞춰 추는 일종의 서막에 해당하는 것으로 악에 대한 선의 영원한 승리를 표현한다.


본공연이 시작되자 다시 무대막이 쳐지고 그 뒤로 은빛나는 손이 잠시 무대막을 잡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지고 반주자들의 반주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숨가쁘게 진행되는 동안 무대막 뒤의 인물에 대한 호기심은 한층 더 강해졌다. 무대막 뒤에서 강렬한 푸른 색채의 인물은 곧 얼굴을 드러내어 무대막을 잡고 자신의 실체를 관객앞에 표현하기 위해 간혹 날카로운 알라르챠(내지름)로 섬뜩함을 유발하기도 했다.


이 공연은 잦은 외부 공연으로 교실에서보다 공연장에서 주로 뵙곤 했던 내 선생님께서 출연한 작품이었는데 새로운 레파토리를 계발해서 초연하는 자리라고 했다. 나중에 안 바로는 ‘아르쥬나 비사드육탐’이란 제목의 공연이었는데 당시 선생님은 내게 애초부터 제목이나 이야기를 말씀해 주시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굳이 그걸 알 필요도 없었다. 설령 들었다 해도 그처럼 육중한 제목을 기억할 리 만무했고.


아는 게 없어 용감했던 나는 작품 중반부쯤에서 “아, 이 작품 지난 번 여행 때 다른 공연장에서 본 것이다”고 동행한 친구들에게 아는 체를 했다. 푸른 얼굴의 왕으로 주인공 같아 보이는 이(‘빠짜’, 푸른 얼굴을 한 신적이거나 고귀한 왕, 또는 신분높은 역할)와 그와 적대적인 관계로 보이는 나쁜 역할의 왕(‘카티’, 빠짜와 대립하는 반동적 인물. 칼이란 뜻의 이름처럼 늘 칼을 지니고 있다. 연기자가 즉흥적으로 단발마같은 소리를 지를 수 있으며 유머러스한 역할로 분하기도 한다.), 두 왕을 싸우도록 부추키는 질투심 많은 왕비(‘미누쿠’-밝은이란 뜻이며 다른 역할에 비해 분장이 자연스러우며 여성, 성자, 어린이 등으로 분) 등 당시 내겐 ‘비슷’한 등장인물과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동행했던 일본친구는 “초연이라던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의아해 했지만 굳이 반박하려 들진 않았다.


시간이 지나 카타칼리에 대해 조금 눈을 떴을 때 난 그때 본 카타칼리가 ‘초연’이었음을 알게 됐고 그 사실을 일본 친구에게 털어놨다. 그제서야 그 친구도 그때 내가 너무 자신감 있게 주장하던 터에 사실이 아님에도 내게 반박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고 나는 한바탕 웃음으로 겸연쩍음을 숨겼다.


사실 내 주장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희양식인 ‘카타칼리’에서 이야기는 인도예술의 영감의 원천인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라마야나, 푸라나 등에서 비롯되고 등장인물들은 개별적인 이름을 가진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이름을 대표하는 유형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쉽게 말해 초심자에겐 그 얼굴이 그 얼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인물유형들은 인도예술의 지침서인 ‘나티아사스트라’에서 공연행위 자체를 신과 악마, 인간의 이야기라고 규정하였듯이 세상만물에 대한 상징적 대변인이기도 하다.


장엄한 몸의 스펙타클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타칼리를 비롯한 인도춤에서 갖는 첫 인상은 원색의 분장과 의상에서 오는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몇 십 킬로에 달하는 의상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연희자들의 단련된 신체가 뿜는 에너지가 관객들을 매료시키기도 한다. 내 키의 반을 넘는 왕관을 쓰고 20KG가 넘는 의상을 온몸에 두르고 격렬한 장단에 맞춰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몇 시간에 걸쳐 연출하는 배우와 악사들을 바라보며 나또한 몸이 만들어내는 그야말로 ‘장관’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탄쿠사(NATANKUSA : Ravivarma Granthavali 저. ‘나탄’은 연기자, ‘쿠사’는 곤봉이란 뜻으로 극작과 공연 비평에 대한 산스크리트 비평서, 10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에서 공연의 최종목적은 장관의 라사를 현실화하는 것이라 하였다. 서양 극작의 미학적 지침서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장관이 극 요소의 말미에 언급된 부차적인 것이라면 인도예술에서 장관은 예술 표현의 시작이자 최종 목적인 관객과의 소통, 연희자가 전달하려는 의도를 이해시키고 완성시키는 라사를 일으키는 핵심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장관이란 단지 눈으로만 보여 지는 시각적인 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시각화되기까지의 신체적 ․ 심리적 ․ 정서적 작용의 원인과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 결과에 이르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장관의 표현방식, 아비나야(Abhinaya)는 크게 네 가지 범주로 이루어진다.

솨뜨비카 아비나야, 앙기카 아비나야, 와찌카 아비나야, 아하르야 아비나야 등이 그것이다.

감정과 사고의 표현에 관한 솨뜨비카(Sattvika) 아비나야는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을,

제스쳐와 무드라를 포함한 몸의 다양한 움직임에 관한 앙기카(Angika) 아비나야는 신체적 측면,대화, 노래, 음운, 운율 등의 소리에 관한 와찌카(Vacika) 아비나야는 음악과 문학적 측면,분장, 의상과 무대 등을 포함해 위의 세 가지 측면이 총합적으로 만들어내는 장면구성에 해당하는 아하르야(Aharya) 아비나야는 시각적 측면을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의 범주는 갈래지어 별도로 존재할 때보다 마치 벽돌 하나하나를 다져서 차곡차곡 집을 짓듯이 오랜 훈련을 통해 단련된 범주별 상호간의 총체적 결합이 이루어질 때 완성된 예술양식으로 거듭난다.(‘Cholliattam',Padmanabhan Nayar 저. 칼라만달람 편찬)


“손길이 가는 곳에 눈길을 보내고

눈길이 가는 곳에 마음을 보내고

마음이 가는 곳에 머물면

바로 그곳에서 감동이 일어난다“


표현행위의 제 1경구(Abhinaya Darpanam)에서 시사하듯이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표현행위가 지향하는 최종적인 목표 사이에는-그것이 신에 대한 경애든 인간애이든- 분명한 인과율이 존재하며 여타의 표현행위들은 그러한 목적에 힘들이지 않고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 하겠다.



'인도고전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전통춤개괄-2  (0) 2005.12.22